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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농부는 왜 이토록 당당하고 행복한가
작성일 2017.06.19 조회수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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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비쉬할 생산자조합 30년전 8명의 농부들이 모여 세운 독일 슈베비쉬 할 농민생산자조합. 지금은 1500명의 농민들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자칫 의도적인 '살농정책'으로 의심, 오인받을 우려가 있을 정도로 한국의 농정은 비효율적,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런 한국 농정의혁신, 또는
정상화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른바 대안농정의 모델과 방법론은 굳이 돈 들여 새로 연구하거나 개발할 필요조차 없다. 이미 어느 정도 돌파
구와 대안은 나와있다. 그냥 독일이 하는 것처럼, EU가 해온 것처럼 따라 하면 된다.

물론 겉으로는 얼핏 보면 독일 농부의 처지도 달라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국가와 사회와 역사가 다른데
한국의 농정 시스템과 패러다임에는 맞
지 않는 옷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독일 농정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검토부터 해보자. 생긴 건 다르지만, 농사의 작목체계나 규모부터 다
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의외로 한국의 농부와 독일 농부들은 닮은 점이 있다. '쌔가 빠지게' 농사를 짓는 한국의 농부들처럼 독일의 농부들도
'뼈골 빠지게' 농사를 짓는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한국의 농부나 독일의 농부나 농사만 지어서먹고 살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농업의
속성, 농부의 운명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 농부들과 독일 농부들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농업이라는 천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이다. 농
업을 존중하는 정도와 농부라는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 그것이다. 독일의 농부들은 농부가 힘든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 자식들은 당연하다는 듯 초등학
교를 졸업하고 담임선생님과 학부모의 합의대로 11살 중학교부터 농업학교를 다닌다. 가족농으로 대를 잇는 독일 농부들은 "농부가 농사를 게을
리하면 농촌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보라"며 당당히 대정부 시위를 벌인다. 죽어서까지 '자랑스러운 농부'였다는 사실을 묘비에 굳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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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농부 독일의 아이들은 11살, 중학교부터 농부가 되는 공부를 시작한다.


농부와 국민이 동등한 '농부의 나라'

한국인으로서는 독일 농부들의 이러한 입장이 얼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한국의 농부들은 이다지도 초라하고 불행한데, 독일의 농부들은
왜 이토록 당당하고 행복한지 의아스럽기조차하다.. 대체 독일 농부들의 그 자존감과 자부심의 밑과끝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독일
농촌연수를 가서 독일 농정의 전문가로부터 이유와 비결을 듣고보니 모든 의문이 다 풀린다. 그렇다. 독일의 농부들은 혼자가, 독불장군이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 국가와 정부와 사회가 독일 농부들을 돌보고 보살피고 있다.

EU의 농부들은 농가소득의 50~90%까지 직불금으로 보전받는다. 농업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가족농들이 협동조합
으로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고 있다. 혼자 벌어 혼자 먹고 사는 것보다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면서 나누는 쪽이 결국 더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행정과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농부들 스스로 농업회의소를 꾸려 함께 자조하고 자치한다. 과연 국가와 정부가 농업과 농촌을 챙기고, 국민들은 농부
의 생활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농부의 나라'로 부를만 하다.

이처럼 독일이 '농부의 나라'를 이룬 열쇠는 단연 직불금이다. 사실상 농민 기본소득에 상응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농가소득
의 60%가 넘는 수
준이다. 한국의 농가는 4% 대에 불과하다. 여기에 조건불리, 친환경농업, 청년, 소농 여부에 따라 직불금이 추가로 가산, 증액 지급된다. 이같은
직불금 규모는 EU(유럽연합) 농정예산의 70%가 넘는다. 사실상 EU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의 핵심정책이다. 토건시
위주의 간접보조사업에 치우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한국의 농정예산 집행구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농가에 직접 지급하니 예산이 중
에 낭비되거나 유용될 여지 자체가 차단돼있어 예산집행의 효율성이 크다.

직불금 정책은 농부들이 "국가와 정부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는 고마움과 신뢰감의 효과로 나타난다. 국가와 정부를 믿는 농
부들은 마땅히 사
회의 규범과 질서를 엄수한다. 길거리에 휴지 하나 버리지 않고 교통신호를 절대 위반하지 않는다. 농민끼리의 협동의 약속과 국민들과 연대의
합의도 잊지 않는다. 결국 직불금 같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신뢰, 협동, 연대, 규범,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socail capital)이 넘쳐나는 민주
적 시민사회, 법치 공화국을 이루는 밑바탕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독일 등 EU농정의 핵심기조와 추구가치는 '돈 버는 농업' 보다 '사람 사는 농촌'에 무게를 두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숙
제는 더 이상 농업
경제학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촌사회학, 사회복지학의 해법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 농부의 나라, 독일에서 국민의 2% 남짓 되는 독일의 농부들은 아무나 될 수 없다. 함부로 아무나 농사를 지을 수 없다. 11살 아이들
이 중학교부터 농업학교에 들어가 농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농업 마이스터과정을 수료하고 농부자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 생명
을 책임지는 성직 같은 공익노동을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독일의 농부는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간다. 독일의 농부처럼 대접하면 우리도 농민과 국민이 동등한 '농부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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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의 나라 5%도 안 되는 농민이 아닌, 100% 국민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대안국민농정이라야 ‘농부의 나라’는 가능하다.



한국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주권국가가 맞는가

이런 농부의 나라를 지켜볼 때마다 자괴감과 회의에 빠진다. 참지 못하고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따지듯 묻고만다. 내 조국, 한국은
과연 주권국가가 맞는가. 미국과 중국, 일본, EU 등 세계 열강 틈에서 경제주권이 없는 건 어느 정도 사실 아닌가. 박쥐처럼 눈치나 보는 처량
한 신세로 경제주권도 없는 국가가 식량주권을 지키겠다니 과연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 늙고 병들고 지친 농민들의 목숨은 아직 무사한가. 이
명박정부로부터 이어진 '살농(殺農)정책'을 더 버틸 맷집과 전의가 아직 남아 있는가. 이명박정부의 농업선진화방안, 박근혜정부의 창조농업은
골치 아픈 농민들을 아예 들판에서 몰아내려는 기만적인 책략이지 않은가. 그 무지막지한 비인간적·반사회적 억압과 폭정을 견딜 수 있겠는가.

본디 농업이란 국가기간산업이라야 맞지 않은가. 교통·에너지·보건의료·교육·주택 등 국가경제의 사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국가기간
산업보다
덜 중요한가.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의 사활이 농업에 달려 있지 않은가. 최우선적으로 국가기간산업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농지·생산
기반시설·농기업 등 농업의 국유화가 단지 사회주의적 발상인가. 사람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자 도리 아닌가. 그렇다면 농민들도
공무원처럼 공익요원으로서 지위를 보장받는 게 옳다. 국가기간산업에 종사하는 공익농민에게 기본소득처럼 월급을 지급하는 게 맞다. 농민 한
사람마다 매달 50만 원씩 월급을 주면 한 해 18조 원의 예산이면 된다. 2014년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 총액 정도다. 투자 효과도 뚜렷치 않은
망국적 토건 사업을 그만두면 된다. 불로소득과 지하경제를 뿌리 뽑으면 된다. 돈을 많이버는 부자는 그만큼 세금을 더 내면 된다.

그런데 다른 고민이 이어진다. 이런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이 나라의 보수적인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이해할까. 설사 진보 정당이
집권한
들 별 탈 없이 실천할 수 있을까. 일반 국민들을 설득할 만한 명분은 충분한가.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길이 순탄할까. 농업은 이미, 충분히 초라
하다. 노동이 종말을 예고하듯, 농업도 곧 종말이 보인다. 정확한 통계도 없는 한국 농민의 수는 5퍼센트도 안 될 것으로 추산되고, 농업생산액
GDP의 3퍼센트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국민 네 명 중 한 명 이상을 먹여 살리는 '기업천하지대본'의신자유주의 세상이다. 국가
는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내다 팔아 식량을 사 먹으면 된다는 궤변으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농정의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국민들
이 긴가민가하고 있다.

다행히 고민의 끝에서, 절망의 끝에서 가늘지만 희망의 빛을 독일에서, EU에서 목격한 건 행운이었다. 그곳에 우리 농업이 할 일이, 우리
농촌이
있어야 할 곳이 보였다. 우리 농민의 살 길이, '농부의 나라'로 가는 길이 보였다. 법이나 제도, 정책이나 전략을 손 보는 정도로는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예 농정의 틀부터, 패러다임부터 크게 바꿔야 한다. 이름 '국민농정', '공익농정', '지역농정', '협동농정'의
4대 농정전환 패러다임으로 논밭을 갈아엎는 '거대한 전환'을 해야 한다.

우선 농민이 국민의 생명을 위하는 농심으로 농사를 짓듯,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자기 가족의 일처럼 걱정하는 '국민농정'으로 바꿔야 한
다. 또
'공익농정'으로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은 국가기간산업 대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는 당장할 수 없는
일도 지역 단위, 마을 단위에서는 우리끼리 결심하면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농정'의 틀로 가야 한다. 또 혼자 독불장군 농사는 지을 수 없다.
물심양면으로 서로 돕는 '협동농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바탕 크게 바꿔야 한다. 처음부터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작5퍼센트의 존재감
없는 우리 농촌의, 농민에 의한, 농업을 위한 한계농정, 고립농정으로 안 된다. 노동자를 비롯한 나머지 95퍼센트 도시민, 소비자, 국민들이
함께 협동하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

전근대적인 농정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협동연대 대안국민농정'이라야 한다. 농민과 국민은 국가적·사회적 합의를 상호 호혜적으로, 유
기적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생산자로서 농민은 소비자인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로서 국민은 생산자 농민
의 생활을 든든하게 지키게 될 것이다. 비로소 국민 모두가 식량주권과 국가주권을 함께 100퍼센트 지켜낼 수 있다. "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걱정
하고,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걱정"하면서 농민과 국민이 아름답게 상생하는 아름다운 나라, 맑고 밝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 '농부의 나라'가 곧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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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농 혁명 한국농정은, 사회민주적 농민, 사회경제적 농업, 사회생태적 농촌 등 3농 혁신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사회혁신적 '3農공동체'로 농정 패러다임 혁명을

오늘날 전국의 농정 현장에는 '3農'이 유행이다. 원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농업 진흥책이야말로 나라를 건지고 백성을 살
려내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본 다산은 비실용적인 농업정책을 실용적이고 혁신적으로 전환하는 대안으로 '3農' 해법을 제시했다. 힘들
고 고단한 농사일을 편하고 쉽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농(便農), 착취체제의 온갖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해 농업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후농(厚農),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 사회에서 선비 못지않은 신분으로 농민들의 지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상농(上農)이 다산의 '3農정책'이다.

결국 '3농(三農)'이라 함은 농업, 농민, 농촌을 한데 일컫는 말이다. 농업은 '생활소득이 보장되는 농업'이라야 한다. 그래
야 '경제공동체마을'을
울 수 있다. 농민은 '일상생활이 행복한 농민'이라야 한다. 그래야 '생활공동체마을'을 꾸릴 수 있다. 또 농촌은 '농촌다운 농촌'이라야 한다.
그래야 '생태공동체마을'을 이룰 수 있다. '돈 되는 농업'과 '행복한 농민' 이없이 '농촌다운 농촌'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농촌다운 농촌'은 국민
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민과 지역의 식량주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양적인
식량주권 못지 않게 질적인 식량주권도 중요하다. 농민들이 주인인 농협도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농정 재정도 합리적
으로 쓰고농민의 민생도 보살펴야한다. 그래야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의 주권이 주인인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다산이 주창했던 이른바 3농 사상은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실현되고 있다. 독일 농민들은 유럽연합과 독일 정부의 농업
지원금 이전에 이미
농촌에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비롯 재해보험, 의료보험, 간병
인보험, 노령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농민들을 농촌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준다. 독일 등 선진 유럽의 농정 예산은 '돈 버는 농업' 보다는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해 주로 쓰여지고 있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부 국가자격증까지 취득해야 농사를 지을 있는 정예화된 2%의 독일
농민들조차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을 지켜야 하는 독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국가에서 직불금으
로 먹여살려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
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4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
째, 농민도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
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
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그리고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
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
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독일을 비롯한 EU회원국가의 농정 당국이 그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가 농업의 10가지 기능 때문이다. 우리 농
업과 농촌과
농민을 지켜야 한다면 이 10가지 기능을 농정 예산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기준으로 삼아 그대로 반영하면 된다. 결코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
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
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농촌을 둘러보면서 '독일의 농부'의 개념과 정의가 저절로 정립됐다. 여기서 '독일의 농부'란 "문화경관 직
불금, 가족농
, 농업학교, 농업협동조합, 농업회의소,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고,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농부"를 뜻한다. 독일이 했다면 한국도 할 수 있다. 단,
농정의 철학을 갖춘 혁명적 농정 지도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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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유경마을 ‘농부의 나라’처럼 보이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남도의 농촌, 순천 유경마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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